42 Days of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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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0장

욥기 20장 / 김세은 / 11월 2일

소발의 말

“내 초조한 맘이(생각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라.” 2절
요즘 중심이 변화받고싶은 갈망함이 너무 커서, 혼자 씨름하면서 많이 힘들면서고 기쁜데. 다시금 감정 생각 표면적인 게 아니라 중심 깊은 곳이 변화되고 싶담 생각이 들어요. 나의 요즘 가장 큰 씨름과 소망.

악인/ 사악한 자가 하나님께 받을 분깃에 대해 말하는 소발.

꿈같이 지나가는 악인
아들들은 가난해지고 재물도 토해내게되며
생명 가득한 강을 보지 못할 것이고
수고해서 얻은 것을 삼키지 못하고
얻은 재물로 즐거움을 알지 못할거라한다.

그리고 이 모둔 것의 이유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려서,
또 자기가 세우지 않은 것을 빼앗아서라고 말한다.

평안이 없을 것이고 그거 기뻐하는 것은 다 보존되지않고 사라지며 행복이 오래가지 못하고 풍족해도 괴로울거라 말한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불에 던지울 것이라 말한다.

하늘이 악인의 죄를 드러낼것이고 악인이 하나님의 진노에 끌려간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자녀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 기쁨, 행복 과 정반대되는 최악의 기업이에요.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는 말씀이 생각나요. 난 아직도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하나님을 올바로 바라보고 더 알고 싶어요. 그래서 풍성한 삶을 살고싶어요.

욥기 19장

욥기 19장 / 박성원 / 10월 31일

(25절)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절)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그리고 내가 가죽이 벗김을 당하더라도 그를 바라보겠다는 고백. 욥의 불평과 힘든 삶 가운데 고통 중에 나오는 신음소리 가운데서 다시 희망찬 고백을 슬픔을 이기고 해낸다.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싫어할 때에, 내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까지 나를 피할 때, 정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순간에도 저렇게 주님 앞에서 희망찬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혼자가 되었을 때, 가진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나는 여전히 주만을 바라볼 수 있을까?

지치고 곤할 때 내 마음을 그냥 놓아버릴 때가 많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욥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고통 정도 일 것 같다. 하지만 놓아버린다. 내 멋대로 해버린다. 그러고 나서 후회한다. 알고 있었음에도, 이겨낼 수 있었음에도 놓아버리고 쓰러졌다. 그리곤 또다시 회개의 자리에 선다. 이번의 회개는 지난번 회개보다 어렵다. 지난번 회개를 올바르게 한 게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또 같은 일로 이 자리에 선 것 같다는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용서하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이 감사함을 또 잊고 쉽게 살아간다. 내가 매일 지어나가는 관계성 안에서의 죄성, 주님 마음으로 다른 영혼을 바라보고 섬기게 하소서. 나의 만족이 아닌, 단순히 세상적인 관계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주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남을 바라보게 하소서.

욥기 18장

욥기 18장 / 김기민 / 10월 30일

욥의 친구, 빌닷의 두번째 충고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충고라기보단 저주에 가까운 말들로 욥에게 거세게 몰아 부치고있습니다.

어둡다. 꺼진다. 빠진다. 차인다. 얽힌다. 쫒아온다. 먹힌다. 뽑힌다. 잡혀간다. 마른다. 찍힌다. 쫒겨간다. 몰려온다. 없다. 놀란다.

사용된 말들만보아도 무척 어둡고 부정적이에요. 조금은 어려워서 우리말성경도 보고 설명도 참고했어요.

2절; 네가 언제나 말문을 닫겠느냐?

자신의 충고를 듣지않고 항변하는 욥을 어리석게 여기고 욥이 공격까지해오자 감정이 고조되어 욥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모습입니다.

세 친구들의 말들, 그리고 욥의 말들 어찌보면 모두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논쟁에 들어가게되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것처럼의 여유는 사라집니다. 자기 주장과 생각만 옳은게되고 아무 결론도 나지않아요.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 생각합니다. 찢고 싸우고 분쟁하고 주장하고 잘난척하고.. 결국 도토리키재기 아닐까요?

그래서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묵묵히 나의 길을 주의 길을 걸어가라. 다른 사람 걱정말고. 주님만 바라보라.

내 입술을 주님이 주장하여주시길 원합니다.

욥기 17장

욥기 17장 / 방예지 / 10월 29일

“청컨대 보증물을 주시고 친히 나의 보주가 되옵소서 주 외에 나로 더불어 손을 칠 자가 누구리이까.” (3절)

지금 욥에게 있어서 온전히 붙잡아주고 믿어주고 들어주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예요. 그러기에 욥은 계속 하나님께 호소 하고 대화하려하고 자신의 고통 끝에는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실거라고 믿어요. 하나님이 그를 구해줄 단 한분이실거기에…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 하는구나…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11-15절)

처음엔 가장 믿음이 강해보이고 인간이기에 하나님을 붙들고 굳굳히 사탄의 유혹을 맞설것 같던 욥마저 무너지네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주시는 빛을 헤아리지 못해요.

욥은 자신의 현재상태를 진단해보며 자신에게는 소망이 더이상 없다고 생각하고 죽음만을 바라봅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질때로 약해진 욥의 모습이 그려져요. 전 여기서 사람은 고난과 유혹때문에 흔들리고 쓰러지고 믿음이 약해지기에 너무나도 가냛픈 존재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믿음이 강했던 욥에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인간이 바뀌는것은 무섭고도 한순간인것 같다고도 느꼇구요. 믿음이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이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도 이런 욥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실거라고 생각되요. 하나님께서 꼭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 욥을 욥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구해주실거라는것을 믿어요. 욥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 하고 소망을 잃은 시점이라도 하나님과 진실된 대화를 지속적으로 하려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거예요. 우리도 우리모르게 한순간에 절망에 빠져있거나 지치거나 몸과 마음이 약해져있는 때가 온다면 앞으로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꼐서 주실 그 때를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욥기 16장

욥기 16장 / 김기민 / 10월 28일

욥이 대답합니다.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 나도 너희처럼 말할수 있나니..”

욥은 정확히 알고잇습니다. 친구들의 정죄와 아픈 말들로 그저 상처받고 아퍼하는게 아니라 주님안에서 분명히 상황을 보고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일때 그 핍밥으로 상처로 무너지는게 아니라 주님을 붙잡고 바로 섭니다. 그럴수 있는 이유는 욥이 반복해서 말하는것처럼 이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만약 이 모든 아픔이 하나님의 주관이 아닌 사단의 주관이라 생각했다면 욥은 분명 무너졌을 것입니다.

20절. “나의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이 구절에서 선명하게 욥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욥은 다 죽어가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눈물의 기도를 드립니다. 진실된 기도, 때로는 어려운 기도를 할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눈물의 기도를 사모합니다. ‘눈물'자체가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내 마음속에 함께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욥기 15장

욥기 15장 / 최주희 / 10월 27일

계속되는 욥과 친구들의 상반된 말 가운데, 앞부분의 구절을 읽으며 답답하고 마음이 어려워졌다. 내가 욥이라면, 너무 답답했을 것 같다. 가뜩이나 힘든데 위로는 커녕 정죄받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도 내가 아무리 obvious한 잘못을 했다고 한들 누군가에게 그 잘못을 드러내면서 말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전에 목사님 말씀중에 그냥 넘어가 주는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욥의 친구들안에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나도 욥과 같이 어렵거나, 고난에 있는 친구에게 따뜻한 위로나 말보다,, 그냥 넘어가주는 넓은 마음보다, 정확하고 원칙적으로 다가가 항상 이야기했던 것 같다. 갑자기 그 모습이 부끄러워 졌다. 내가 틀린말을 한 것은 아니였지만, 이론적으로 원칙적으로 모두 다 바른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충고라는 명목아래 했던 말들이 하고 나면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충고는 지식을 기반으로 나오기 때문에.. 나도 모른ㄴ 우월감과 교만함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무엇이든 알게하시고 우리는 보시는데 난 지식으로 영혼에게 반응하고 다가갔었구나.. 하는 회개를 했다.

어제 주일 말씀중에 포도나무의 존재의 조건 두번째가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영혼을 사랑하는 자. 열방을 품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기도했던 것이 오래 된것 같다. 익숙함에 본질적으로 잃어서는 안되는 사랑이라는 마음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매일 ‘사랑과 마음'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질적인 나의 뿌리를 다시금 다지게하는 묵상이었던 것 같다. 아멘.

욥기 14장

욥기 14장 / 김세은 / 10월 26일

욥이 계속 기도해요.
사람을 화려하지만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에 비유하며 그러한 사람을 주께서 눈여겨보심에 대해 의문을가지며 사람의 더러움에 대해 말하고 사람의 정해진 생명과 날수에 대해 말해요.
이 기도를 보면서 ‘사람됨'에 대해 다시한번 기억해요. 나는 피조물이고 주는 창조주 이심을 기억해요. 나의 작음과 하나님의 크심. 감히 내 머리로는 상상도 안되는 주님의 크심을 기억하며 나를 계속 하나님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봐야겟어요.

“Humility is not thinking more of myself or thinking less of myself but thinking if myself less.” 라는 팀캘러 목사님 말을 오늘도 기억해야겟어요.
24 시간 중에 내 생각보다 하나님 생각을 더 많이하고, 나 자신에게 시선을 두지않고 이웃에게 시선을 두는, 그래서 자유하고 기쁜 하루하루 살아가길 소망해야겠어요.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중에도 계속 애곡하는 욥의 모습도 인상적이에요. 나라면 힘이빠져서 기도도 멈췃을거같은데.. 그래도 하나님과 계속 대화하는 걸 보면 욥은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거 같애요. 나도 하나님과 쉬지 않고 이야기할래요. 계속 의지하고 범사에 함께할래요.

욥기 13장

욥기 13장 / 이사랑 / 10월 25일

욥은 자신을 고난가운데 더 힘들게 하는 친구들에게 너의는 다 쓸모없는 의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잠잠했더라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자신의 말을 잘 들어보면 하나님의 불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속이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만약 잘못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책망하실것이라는 담대함을 비춘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죽이신다면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욥에게는 이제 변론할 기운마저 없다. 나는 진정한 위로가 무엇일까 하는 묵상을 했다. 모두가 떠나갔지만 남아있는 세 친구들은 욥의 잘못을 변론하기 바빴다. 세상의 누구도 어쩌면 나 스스로의 고난을 위로할수 없다. 왜냐면 막상 고난을 견뎌야할 건 본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그고난을 스스로 받으셨다. 십자가는 순종함으로 나아간 것이다. 욥에게 고난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저 단지 욥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였을까? 나는 욥의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게 했고 그리고 이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주깨 돌아오는 계속되는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고난이 고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우리의 나머지 삶이 더 가치있고 빛나게 하신다.

욥은 기도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였으면 가르쳐 달라고 젊을 때의 죄가 있다면 받게 하시고 정검해 다랄고 한다. 고난이 오면 우리는 자시의 죄가 무엇이였음을 찾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죄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대도 말이다. 그럴때는 욥처럼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거 같다. 그리고 주님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그리로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실것이니깐… 학기가 너무 바쁘게 흘러간다. 근데 하나님이 더 나를 쉬지 않게 하신다.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가까이하게 하신다. 그래서 요즘 감사하다. 이시간들을 통해서 더 내 믿음과 능력이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욥기 12장

욥기 12장 / 박성원 / 10월 24일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4절)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명예가 바닥에 떨어졌다. 명예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이 가장 크게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이 주께 속해있음을 인정한다. 욥도 그의 친구들의 의견에 반론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데는 변화가 없다.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길은 세상과 다르고 험난할 수있다. 명예는 커녕 주변의 웃음거리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세상의 삶속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한 순간에 한없이 떨어질 수도 있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일엔 내손에 없을 수도. 잘 될때만 주님 감사합니다만을 외치는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그리스도인은 이땅에서 잘되고 잘살고자 하는 종교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할때 아버지께서 물으신다. 아들아 네가 가진 것을 다 잃더라도 내가 가라는 길을 가겠느냐?

이번 주는 많이 지쳤다. 수요일쯤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욥기를 읽는 것도 힘들었다. 물론 욥의 고통에는 비할바가 되지 못하겠지만. 억지로 기도하고 말씀읽은것이 그나마 나를 살렸다. 하나님과 더 친해지고 싶다..